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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5-21

"숙련노동자 노하우 AI에 이식 … 중소 제조업 AX 돕죠"

이지현 시즐 대표
노후 장비에 컨트롤러 달아
데이터 수집·공정혁신 유도
스마트시티·탄소저감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것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이 한국 산업 혁신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국내 중소 제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공장 장비 상당수가 수십 년 된 노후 설비인 데다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아 AI 도입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품질 혁신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새 공장을 짓고 첨단 장비를 들여놓을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이지현 시즐 대표는 "국내 제조업은 중국·미국과의 경쟁 속에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위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매년 수만 개의 중소기업 공장이 사라지는데, AI 같은 거대 담론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준비할 여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2016년 시즐을 창업한 이 대표는 제조 현장의 AX를 위해 직접 지방 곳곳의 제조업 현장을 찾아다닌다. 창업 당시 그는 우연히 노후화된 제조업 공장을 보게 됐는데, 수십 년 된 장비가 작동하면서 여러 불량품을 만드는데도, 회사 측은 생산량과 불량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제조업은 우리나라의 뿌리 산업이지만,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일단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기업의 상황을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시즐의 목표이자 AX의 시작"이라고 했다. 시즐은 프레스나 용접 기기 등 제조업 현장에 있는 노후 장비를 겨냥한다. 중소기업들은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노후 기기의 문제를 알면서도 새로운 첨단 기기를 도입하지 못한다. 시즐은 이 기기를 해체한 후 자체 설계한 컨트롤러를 장착한다.


컨트롤러는 기기의 생산량과 품질을 측정해 데이터를 만든다. 장비의 움직임, 가동 상태 등 고정밀 데이터가 수백억 건 단위로 만들어진다. 낡은 기계에 AI 두뇌를 심는 것과 같다.


원래 자사 공정에 대해 아무런 데이터도 갖지 못한 기업도 시즐의 컨트롤러를 이용하면 핵심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AI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큰돈을 들여 새 장비를 도입하지 않아도 공정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단순 자동화가 아니라 제조업의 축적된 감각과 노하우를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제조업 현장은 숙련 노동자의 노하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기기가 작동하는 소리만 듣고도 윤활유의 양이나 기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식이다. 다만 노동인구가 고령화하고 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숙련 노동자는 줄어들고 있고, 제조업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즐의 기술은 숙련 노동자의 노하우를 기록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숙련 노동자의 경험과 직감을 AI로 검증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며 "AI가 이들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노하우를 더 강력한 자산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처음 현장을 찾아가면 일부 노동자들이 반발하기도 하지만, 그는 현장 노동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설득을 거친다.



최근 시즐은 한 단계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AI가 스스로 공장 상황을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돕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장 운영자가 "오늘 불량률이 왜 높아졌느냐"고 물으면 AI 에이전트가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장비나 제품군 문제를 짚어주는 식이다. 생산량 감소 원인이나 공정 개선 방향도 실시간으로 제안한다.


기존 생성형 AI가 외부 공개 정보만 활용한다면, 시즐의 AI 에이전트는 공장 내부 데이터에 직접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다. 공정 데이터와 생산 이력, 품질 정보 등을 기반으로 실제 제조 현장에 특화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공장 운영자가 현장을 계속 돌아다니며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AI가 먼저 상황을 분석해 알려주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시즐은 향후 제조업 외 산업으로도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스마트팜과 스마트시티, 탄소 저감 인프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표는 "K팝과 K뷰티 다음은 결국 K매뉴팩처링 시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중소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 한국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